작가들의 연애편지
김다은 엮음 / 생각의나무
나의 점수 :
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스님의 주례사법륜스님 지음, 김점선 그림 / 휴(休)
세 책과 사랑의 공통점이 있더냐. 있긴 있다. 적어도 [스님의 주례사]와 [작가들의 연애편지]는 사랑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랑을 어떻게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서재 결혼시키기]는? 여기에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책에 대한 게 아니라, 어떤 식의 사랑을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내가 책을 읽은 순서는 [스님] [서재] [작가] 순이다. 읽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스님]을 읽으면서는 내가 너무 상대에 대한 집착에 젖어 나를 혹사시키고 괴롭게 했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번뇌와 슬픔, 괴로움에 그리도 쉬이 휩싸이는 이유는 바로 내가 상대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그 기대에 어긋나면 그것 때문에 괴로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더이상 그에게 나의 기준을 강요하지 않으리라, 있는 그대로의 그를 사랑하리라, 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가 도를 닦는 스님이 아닌데, 그게 쉽겠나. 마음도 편해지지 않고 정말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번뇌가 새로 생겼다.
[서재]에서는 어찌 보면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왔다. 물론 그들에게도 갈등은 있을 거다. 그 단적인 예로 두 사람의 서재를 합치는 일, 같은 그런 갈등. 하지만 그들은 순조롭게 풀어냈다. 즐거운 결혼생활을 했고, 서로의 취향과 생각을 존중하고 또 그 서로의 모습을 사랑하기에 행복했다. 어찌 보면 요새 말하는 '쿨'함을 작가 부부는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세상을 보는 그 모습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리라. 하지만 나는 그렇게 쿨한 인간이 아니다. 스님처럼 도를 닦듯 사람을 사랑할 수 없고, 상대에 대해서 쿨하게 사랑할 수 없으면, 내 사랑은 잘못된 건가. 실패한 건가.
[작가]를 읽으며, 아침에 지하철에서 눈물이 나려는 것을 참았다. 난 아침에 멍한 정신에 괜히 책에 자극되어서 그런 줄 알았지만, 집에 오는 길에 읽으면서도 그랬다. 작가들은 그 번뇌를 모두 이고지고 그 안에서 고통스러워 하기도 하고, 나중에서야 그 괴로움이 어리석은 일이었음을 깨닫기도 하고, 지금 스스로의 그 사랑으로 인한 괴로움을 귀엽게 보기도 하고, 여튼 그 모든 것을 안고 상대에게 고백하고 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너무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 모든 것을 포용하고, 그게 나라고 인정한다. 그래서 행복하다. 아니 슬플 수도 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세 번째 책에 와서야, 나는 내가 '잘못된 사랑'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난 정말,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불안함에 휩싸였다. 스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저 부부처럼 쿨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사바세계에 사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이상적인' 모습만을 갖출 수 있겠나. 스님은 그래도 스님이니까. 하지만 저 부부는 책에 나타나는 것 말고도 다른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그리지 않았을 뿐이지. 그 이면을 보여준 것이 [작가]였다. 아. 나는 눈물이 솟구쳤지만 안도했다. 그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 목을 옥죄던 무엇이 사라진 것 같았다.
사랑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랑은, 너무 집착하는 것도, 너무 쿨한 것도 물론 다 부질 없지만, 적어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의 방식으로 하는게 '나쁜' 혹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때로는 그가 하는 행동에 화를 내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고, 안아주고 싶고, 때로는 사랑받고 싶어 하고. 그 나의 사랑. 그런 식으로 하면 될 것이란 생각을, 드디어 하게 되었따. 자신감? 자신감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넌 잘못된 거야'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평화로워졌다. 오늘 밤에 자기 전에, 아, 정말 거의 7~8개월 동안 하지 않았지만 한 번, 사랑한다 말해보고 싶다. 그래. 그냥 지금 행복하게 느끼고 사랑하면 되겠지. 세 권의 책을 읽으며넛 내 사랑의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세 책은 가치가 있고, 감사할 만한 대상이 되었다.